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셸 플라티니 (문단 편집) === [[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|국가대표]] === 1976년에 국가대표에 데뷔한 플라티니는 [[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|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]] 16강 조별리그에서 개최국 아르헨티나 전에서 60분에 동점골을 넣으나 팀은 2:1로 패했고 그 뒤 [[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|헝가리]]를 3:1로 꺾었으나 프랑스는 결국 탈락하고 만다. 이후 [[1982 FIFA 월드컵 스페인|1982년 스페인 월드컵]]에 출전하였으나 처음에는 프랑스는 생각보다 경기력이 좋지 못했고 플라티니 역시 부상때문에 큰 활약은 하지 못한다.[* 이때 팀의 에이스는 플라티니가 아니라 [[알랭 지레스]]였다.] 프랑스는 [[쿠웨이트 축구 국가대표팀|쿠웨이트]], [[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|잉글랜드]], [[체코 축구 국가대표팀|체코슬로바키아]]와 같은 한 조에 속했는데 라이벌 [[잉글랜드]]와의 시합에서 전반 1분만에 [[브라이언 롭슨]]에게 선제골을 내주었고 이후 전반 24분에 제라르 솔레르가 동점골을 넣었으나 다시 롭슨에게 리드골을 내주며 설상가상 후반 83분에 폴 마리너에게 쐐기골을 내주며 3:1로 패한다. 이후 [[쿠웨이트]]와의 경기에서 플라티니가 득점을 하며 4:1로 승리했고 [[체코슬로바키아]]와의 경기에선 디디에 디스의 선제골로 앞서가나 후반 84분에 [[안토닌 파넨카]]에게 [[페널티킥]]으로 동점을 내줘 결국 비기고 만다. 이후 12강 조별리그에 진출하여 [[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|오스트리아]]와의 경기에서 1:0으로 승리, [[북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|북아일랜드]]를 상대로 4:1로 승리하며 4강에 진출한다. [[독일 축구 국가대표팀|서독]]과의 경기에서는 전반 17분에 [[피에르 리트바르스키]]에게 선제골을 내주나 플라티니 본인이 [[페널티 킥]]을 성공시키며 동점으로 따라잡고 이후 연장전까지 3:3 동점 등 팽팽한 시합이었다. 그런데 시합 중 최악의 오심이 일어나는데 그 유명한 '바티스통 사건'이다. 플라티니가 환상적인 킬패스로 파트릭 바티스통에게 연결했는데 서독의 [[골키퍼]] [[하랄트 슈마허]]가 바티스통을 가격해 바티스통을 기절시켰고[* 바티스통은 슈마허에게 얻어맞아서 아예 턱뼈가 부서졌다. 결국 경기 도중 교체되어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었고 대수술을 받아야만 했다.] 정작 슈마허는 퇴장은 커녕 경고도 받지 않았다. 결국 프랑스는 [[승부차기]]끝에 5:4로 패배해 결승 진출이 좌절된다. 이후 3·4위전에서도 [[즈비그니에프 보니에크]]가 이끄는 [[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|폴란드]]에게 3:2로 패해 4위에 그치고 만다. 하지만 플라티니는 [[1982 FIFA 월드컵 스페인|1982년 스페인 월드컵]] 올스타팀에 뽑혔다. 프랑스 국가대표 미셸 플라티니가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던 시점은 역시 '''[[UEFA 유로 1984|유로 1984]]'''이다. 플라티니가 주장 완장을 걸고 참가했던, 그리고 [[프랑스]]에서 열리고 [[프랑스]]가 우승했던 유로 1984는 '''[[게티스버그 연설|플라티니의, 플라티니에 의한, 플라티니를 위한 대회]]'''라는 이 단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. 8강 조별리그 1차전 [[덴마크 축구 국가대표팀|덴마크]]전에서 결승골로 1:0 승리를 이끌었고, 2차전 [[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|벨기에]]전에서 [[해트트릭]]을 기록하며 5:0 승리를 이끌었고,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[[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|유고슬라비아]]전에서도 [[해트트릭]]을 넣으며 3:2 역전승을 이끌고, 조1위로 4강에 진출한다. 준결승전인 [[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|포르투갈]]전에서 2:2로 팽팽히 맞서던 연장 후반 14분에 결승골을 내지르며 팀을 결승전에 안착시켰으며, [[에밀리오 부트라게뇨]]가 이끄는 [[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|스페인]]과의 결승전에서도 불꽃 [[프리킥]]으로 선제골을 작렬, 2:0 승리를 이끌며, 조국 프랑스에 사상 최초의 메이저 대회 트로피를 안겨주었으니 이젠 [[마에스트로]]를 넘어서 국민영웅이었다.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external/dantri21.vcmedia.vn/Platini29051201_bebe7.jpg|width=100%]]}}} || 플라티니는 이 대회에서 '''5경기 동안 9골을 몰아쳤는데, 그것도 모든 경기에서 결승골을 기록했다.''' 그것으로도 모자라 '''2경기 연속 [[해트트릭]]'''을 기록했다. 이 2게임 연속으로 오른발, 왼발, 머리로 1골씩을 넣으며 '퍼펙트 [[해트트릭]]'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. 당시 프랑스 지상파에서는 "다음번 플라티니가 보여줄 묘기는"이라는 제목의 TV 프로그램이 방영되기까지 했다니 이 무슨. 게다가 저 중 [[페널티킥]] 골은 벨기에전 쐐기골 뿐이고 [[프리킥]]은 두 골이나 넣었다. 더더욱 대단한 것은 유로 1984에 출전한 8국가 중 9골 이상을 기록한 국가는 플라티니의 프랑스(14골)과 준결승에서 좌절한 덴마크(9골)이고 나머지 팀들은 2~4골에 그쳤다. 그리고 조국 프랑스마저 자신이 넣은 골을 제외하면 5골이다. 즉 한 선수가 웬만한 팀 하나보다 골을 많이 넣었다. 한 마디로 얄짤없는 대회 득점왕[* 유로 MVP는 공식직으로 1996년 대회부터 수여했다.]이었으며 현재까지도 '''유로 단일 대회 최다 득점''' 기록이다.[* 좀 더 부연하자면, 유로 1984 득점 2위 [[프랑크 아르네센]]이 3골, 3위 [[루디 푈러]]가 2골이었고 전설적인 스트라이커인 [[게르트 뮐러]]와 [[마르코 반 바스텐]]도 각각 4골, 5골이 한 대회 최다 득점 기록이다. 플라티니의 아성에 가장 근접한 선수는 [[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|프랑스]] 후배인 [[앙투안 그리즈만]]으로 [[UEFA 유로 2016]]에서 6골을 넣어 대회 MVP와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이 기록이 유로 단일 대회 최다 득점 2위에 올라있다.] 게다가 플라티니는 [[UEFA 유로 1984|유로 1984]] 한 대회만 출전해서 9골을 넣은 것인데 이 9골이 2021년까지도 '''유로 통산 득점 순위에서도 1위'''였다는 것이다. 다시 말해서 유로 대회에서 3번이나 4번 출전한 선수들도 수두룩한데 통산 득점이 9골을 넘는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.[* 2016년 7월 7일(한국시간) [[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|포르투갈]]의 [[크리스티아누 호날두]]가 [[웨일스 축구 국가대표팀|웨일스]]와의 [[UEFA 유로 2016|유로 2016]] 4강전에서 1골을 넣으며 플라티니의 9골과 타이를 이뤘다. 하지만 호날두는 [[UEFA 유로 2004|유로 2004]]부터 [[UEFA 유로 2016|유로 2016]]까지 네 번의 유로 대회를 거치며 누적된 기록이다. 이후 2021년 6월 16일, [[유로 2020]] 조별리그 [[헝가리]]전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며 총 11골로 단독 1위로 올라섰다.] 그냥 [[전무후무]]한 기록 그 자체다. [[UEFA 유로 1984|유로 1984]]에서의 플라티니의 퍼포먼스는 [[1986 FIFA 월드컵 멕시코|1986년 멕시코 월드컵]]의 [[디에고 마라도나]]와 더불어 역대 최고였다. 팀 득점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고, 그렇다고 골만 넣은 선수도 아니고 중원에서 패스, 플레이메이킹을 다 하면서 기록한 스탯이다. 그만큼 임팩트가 어마어마했다는 뜻. 다만 대회 특성상 [[FIFA 월드컵|월드컵]]이 [[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|유로]]보다 한 수 위의 대회이기 때문에 후대의 평가나 언급에서 자주 밀리는 것뿐이지... 플라티니가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넣은 스탯은 72경기 41골. 2007년 [[티에리 앙리]]가 추월하기 전까지 프랑스 국가대표 최다 득점 기록이었다. 이후 2020년 [[올리비에 지루]]가 다시금 이 기록을 깨며 프랑스 대표팀 역대 득점 2위로 올라섰다. [[1986 FIFA 월드컵 멕시코|1986년 멕시코 월드컵]]에서 플라티니는 대회전 부상을 입고 진통제를 먹으며 뛰고 있었는데 [[캐나다 축구 국가대표팀|캐나다]]와의 24강 조별리그 1차전은 [[장피에르 파팽]]의 골로 1:0 승리, [[이고리 벨라노프]], [[올레흐 블로힌]], [[리나트 다사예프]]의 [[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|소련]]과는 1:1로 비기고 [[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|헝가리]]를 3:0으로 승리하여 조별리그를 2승 1무로 순항하여 16강에 진출한다. 16강전에서는 [[알레산드로 알토벨리]]가 이끄는 [[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|이탈리아]]를 상대로 전반 15분에 플라티니가 선제골을 넣으며 2:0으로 가뿐히 이기고 8강전 [[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|브라질]]과의 경기에서 [[카레카]]에게 선제골을 내주나 플라티니가 40분에 동점골을 넣으며 결국 연장전까지 가게된다. 이때 연장전에서 프랑스에게 위기가 오는데 바로 [[페널티 킥]]을 내주고 만 것이다. 그러나 하늘이 도왔는지 '킥의 달인'이라 불리는 [[지쿠]]가 페널티 킥을 실축하면서 경기는 [[승부차기]]까지 가게 되고, 플라티니는 비록 승부차기를 실축했으나 프랑스는 결국 4강에 진출에 성공한다. 이후 4년전 준결승 상대인 서독을 만나게 되나 프랑스는 [[안드레아스 브레메]], [[루디 푈러]]에게 연속골을 내주며 2:0으로 패배, 결국 설욕에 실패하고 결승 진출도 좌절되었다.[* 8강에서 연장전에 승부차기까지 치룬 건 서독도 마찬가지였다.] 하지만 3·4위전 [[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|벨기에]]와이 시합에선 연장전 끝에 4:2로 승리했고 3위를 차지하며 플라티니는 [[1982 FIFA 월드컵 스페인|1982년 스페인 월드컵]]에 이어 [[1986 FIFA 월드컵 멕시코|1986년 멕시코 월드컵]]에도 올스타팀에 선정된다. 은퇴 직전 [[쿠웨이트]] 국왕의 요청을 받아 쿠웨이트와 소련의 친선경기에서 [[쿠웨이트 축구 국가대표팀]] 소속으로 1경기를 뛴 적이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